돌궐족 후예들의 나라 터키는 2차 세계대전 종전 5년 뒤인 1950년 한국에서 벌어진 6・25 전쟁에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 중의 하나이다. 터키는 먼 동방의 형제 나라에 가족과 연인들의 애절한 사연을 안고 있는 투르크 전사 1만5천여 명을 출병시켜 721명 전사, 2,000명 부상, 168명 실종을 기록한다. 부산 유엔공원묘지에는 462명의 영령이 잠들어 있다.
2017년 한국・터키 수교 60주년 기념 한・터 합작 울카이 감독의 <아일라, Ayla: The Daughter of War>는 슐레이만 비르빌레이(Süleyman Dilbirliği) 하사(이스마일 하지오글루)와 전쟁고아 아일라(김설, 호적명 김은자)와의 전장에서의 만남과 육십년만의 상봉 사연을 담고 있다. 터키영화의 특정미학이 담긴 작품은 신파성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획득한다.
터키항공사(Turkish Airlines)가 제작비를 대고, 터키 문화관광부가 지원한 터키 풍 영화는 2017년 6월 촬영이 종료되었고, 터키에서 10월 27일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핵심은 한국에서 삼은 ‘특별한 부녀의 60년 만에 재회’였다. ‘응답하라 1988’의 아역배우 김설이 주인공 ‘아일라’를 맡았고, 영화의 대부분은 터키에서 촬영되었고 대사는 터키어이다.
<아일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감독은 터키는 한국의 구원자였음을 밝히면서 작품을 전개시킨다. 연극적 이미지로 다가오는 영화, 나무 자전거를 타고 놀던 김설의 시골마을에 들이닥친 인민군은 이유 없이 주민들을 학살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참혹한 죽임의 상황에 김설은 울음마저도 멈춘다. 평북 군우리 근처, 사망자들 틈에서 동사직전의 김설을 터키군이 발견한다.
영화는 슐레이만이 참전하기 전 터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조국의 부름과 여자 친구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다. 슐레이만은 마를린 몬로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자전거로 달리는 클래식한 풍경, 고전적 대화 속에 한국전 파병이 끼어든다. 슐레이만은 참전을 결정하고 ‘너를 생각하면 내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매일 출근하는 모습을 기억할께!’의 작별 대사가 오간다.
울카이의 <아일라> 영화작법은 할리우드와 차별화된다. 금년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에 출품된 터키식 블록버스터는 대규모 자본에 의한 화끈한 전쟁 신이나 인체에 대한 잔혹한 장면, 종교적 우월성 부각은 제외된다. 이 영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본격 전쟁을 다루지는 않는다. 영화 곳에 생존자 두 사람은 과장과 코미디 같은 실화를 증거 한다.
영화 제목은 냉정하다. ‘아일라, 전쟁의 딸’이다. 각본은 죽음의 음습에서 희망으로 떠오르는 보름달 같은 아일라의 향방에 관심을 두게 만든다. 달과 별을 숭상하는 터키인 병사들이 붙인 이름 아일라는 터키어로 ‘달’이라는 뜻이다. 감독은 터키인들의 기본 덕목인 정의, 의리, 신념을 부각시키면서 인간애의 실천자 슐레이만을 터키와 동일시시킨다.
감독은 육십년에 걸친 시간의 나이를 이해하거나, 영화문법상 터키식 영화 프로세스를 거부냐의 선택권을 관객에게 맡긴다. 슐레이만은 부산행 배에서 달걀가루로 개미를 모으며 개미와 공존하는 법을 보여주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전선에서 아일라를 부대로 데려오고,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를 치유해내는 정성은 아일라의 ‘아빠’라고 불릴만하다.
파병 이년 째, 전우의 사망과 자신의 부상을 겪은 뒤, 원대 복귀 명령을 받은 슐레이만은 터키어를 곧 잘하는 딸 마를린 몬로 아일라에게 “아빠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다.”라고 하며 다독인다. 개미의 독생법을 주지시키던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짐 가방에 넣어 출국하려다 실패한 뒤, 터키군이 수원 근교에 세운 ‘앙카라 학원’에 아이를 맡기고 떠난다.
이기트 귀랄프 각본은 느릿하게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터키에 귀국한 슐레이만에게는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여자 친구 누란(담라 죈메즈)은 결혼을 했고, 가족들은 결혼을 재촉했다. 결혼한 뒤에도 장성한 딸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잊지 못해 사원에 기도를 드리러 가고, 아일라는 ‘김은자’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 살아간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MBC춘천 다큐멘터리 방송과 팀의 도움을 받아 2010년 4월,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서 슐레이만(체틴 테킨도르)과 할머니 아일라(이경진) 김은자는 60년 만에 감격적인 재회를 한다. 첫 만남 때처럼 재회의 순간에도 언어의 장벽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일라>는 재회 후 스텝롤과 함께 부친을 그리는 아일라의 편지가 읽혀지면서 종료된다.
<아일라>는 보편적 전쟁영화의 도식을 벗어나 있고, 전장에 핀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눈싸움과 도쿄여행 같은 낭만, 인근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 같은 스릴, 연습 같은 백병전 씬, 가족 같은 지휘부, 마를린 몬로(클라우디아 반 에텐)의 위문공연, 터키 지진 속에서도 아일라의 사진을 챙기는 설정 등이 부녀간의 사랑을 따뜻하게 만든다.
은혜를 아는 나라 한국은 터키의 지진 피해에 지원과 구조 활동에 나섰다고 터키인들은 고마워했다. ‘희망’은 늘 꿈꾸는 자의 몫, 대상 인물의 실존은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전쟁의 추억은 잊혀져가는 6・25 전쟁과 터키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올드팝이 나름대로 정취가 있듯, 고전적 <아일라>는 시대를 치유해내는 명약이 되었다.
장석용
영화평론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PAF 영화평론상 수상, 르몽드 영화평론상 수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서경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소속, 이태리 황금금배상 심사위원,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 다수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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