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지나 교수의 연구실엔 영화관련 서적과 비디오가 빼곡이 꽂혀 있다. 학창시절에도 그에게 영화는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언니 오빠가 읽던 프랑스 소설에 매력을 느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대 불문학과에 진학하였다. 프랑스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 불어를 열심히 공부하였고, 대학도 불문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영화를 하게 된 과정이 아주 복잡해요. 대학에 들어가 철학도 함께 공부를 했는데, 매우 심취를 했건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허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만난 게 인류학이었어요. 특히 영상인류학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에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영상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자금을 모으던 그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생겼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영화아카데미 1기를 모집하는데, 학비 전액 면제에 학업 우수자는 유학을 보내준다는 매력적인 제안이 붙어 있었다. 그는 오로지 프랑스로 가서 영상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곳에 지원을 했고,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프랑스 유학중 한국영화 보며 페미니즘에 눈떠 비록 유학에 대한 영화아카데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곳에서의 1년은 그가 영화로 전공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7백만원을 들고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이란 게 다 고생스럽지만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책을 살 돈이 없다는 거였어요. 돈이 없어 값비싼 책은 못 사고 복사를 했는데, 제가 약시라서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나 외국에 가면 복수를 하는 심정으로 꼭 서점에 들러 책을 한아름씩 사요. 시간이 없을 땐 가장 큰 서점에 가서 제목과 목차만 주르륵 보고 골라 1시간 만에 몇백달러어치를 살 때도 있었어요. 한달 월급을 다 쓴 적도 있으니까요.” 그는 6년여의 공부 끝에 91년 프랑스 파리 7대학 영화기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단순한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시네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있을 때에는 깊이 느끼지 못했던 우리 사회 여성관의 문제점을 프랑스에서 한국영화를 보며 절실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학 당시 그는 프랑스 영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반대로 낭트 영화제에서 임권택 회고전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하는 등 한국영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일도 했다. 그런데 한국 영화감독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하면 프랑스 기자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의 경우 ‘한국여자들은 저렇게 두들겨 맞습니까’ 하고 물어요. 영화 ‘씨받이’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끼리 저렇게 강간적으로 섹스를 합니까’ 하고 물어요. 그러면 한국 남자들은 그 대답을 못하죠. 사실이 그렇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거기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크게 피해를 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가부장적이지 않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여학교를 나와 남녀차별을 겪을 일도, 가부장적 사고관을 세뇌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영화아카데미에서 남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차별을 느끼긴 했지만 바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큰 갈등을 겪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모든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다 페미니스트예요.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부장제에 조금씩 길들여지다가 죽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죠. 페미니즘운동은 그걸 빨리 깨닫도록 하는 것인데, 저는 그게 빨랐을 뿐이죠.” 그는 한국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프랑스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돌아오자마자 한국영화에 대해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왜 영화는 한국여성의 리얼리티와 접속하려 하지 않는가’ ‘유치한 남성 판타지 속에 갇혀 그들만의 리그를 하는데 언제까지 그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하고. 그의 한국영화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지난해엔 ‘남성 판타지로부터의 탈주’ ‘여성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영화평론가 유지나의 매혹적인 글쓰기’라는 부제를 단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숨이 막혀요.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논쟁을 해야 하나 싶어 공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 이 일을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10여년 전, 그가 처음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채 목소리를 높였을 때 뒤에서 수군거리며 그를 힐난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비난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하건만 역시 ‘유지나’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