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탄생>(Twice a Woman) 월드 프리미어 : 여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민아 (영화평론가)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여인의 탄생>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재탄생한 어느 한 여성의 용기에 찬 결단에 대한 이야기다.
검은 화면 위로 “우리네 삶은 같은 거야”라는 속삭임이 들려오고 화면이 서서히 밝아오면, 한 여성의 얼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되고 거기서 그대로 멈춘다. 영화는 움직임이 없는 정사진 이미지로 막을 엶으로써 이 젊은 여인의 비밀스러운 인생에 궁금증을 더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답고 신비로운 인상은, 카메라가 서서히 줌 아웃하면서 여인을 풀 쇼트로 잡아낼 때, 그녀가 놓여있는 끔찍한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바뀐다. 무섭게 호통치는 아빠, 그 앞에서 부서지는 엄마, 매맞아 피투성이가 된 여인의 얼굴과 멍든 몸을 지켜보는 시선의 주체는 그들의 십대 아들이다. 하혈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간 까뜨린은 사연을 눈치챈 여의사의 도움을 받을지 말지 망설이지만, 안느라는 경험이 풍부한 중년여성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모자는 그들이 살던 잿빛 마을과 달리 초록으로 물든 광활한 풍경의 북구 퀘백으로 도주한다. 이제 사람들은 그녀를 소피라고 부른다. 그녀는 소피로 이름불리는 싱글맘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한다.
옛 기억으로 흔들리는 소피는 여동생에게 전화하고, 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안느는 또 다시 모든 걸 버리고 떠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그녀가 진정한 새로운 여성이 될 기회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모든 힘을 거부하고 거친 세상을 피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가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남편과 나누었던 사랑의 추억이다. 그녀는 아프지만 아버지를 원하는 아들을 멀리 보내고, 자신을 찾아온 남편에게 또다시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이젠 까뜨린이 아니기에 주먹을 꽉 쥐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영화는 서사를 긴장감 있게 차곡차곡 구축해나가는 밀도 높은 영화는 아니다. 새로운 정체성을일구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 여성의 심경의 변화는 정말로 영화적인 방식으로 펼쳐진다. 인물이 실내로 들어오면 카메라는 그들을 클로즈업으로 타이트하게 잡아 폐쇄공포증을 야기하고, 인물이 실외에 있을 때는 멀리 롱쇼트로 잡아내어 탁 트인 광대한 자연이 불행한 인간들에서 넉넉한 안식처가 될 것임을 상징한다. 시퀀스 단위는 짧게 분절되어 있는데, 하나의 사건을 담은 시퀀스는 페이드 아웃으로 조용히 이미지가 사라지며 마감된다. 각각의 시퀀스들은 긴 서사를 구축하는 하나의 단위 요소로 기능하기 보다는, 짧게 배열되어 초현실적 인상을 만들어낸다. 실제 삶은 각각 분절된 단위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는 바, 영화는 현실에 더욱 다가선다. 말 없는 행위들을 관조하는 카메라, 비애감 젖은 음악의 활용은 영화의 시적 완성도를 높인다.
영화는 엄마의 변화 과정을 담아낸 아들의 기록 영상으로 끝 맺는다. 계곡에서 벌거벗은 채 수영하는 엄마를 숨어서 촬영하는 레오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의 에로틱한 훔쳐보기 시선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또한 동시에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한 그의 입장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양수를 헤엄쳐 다시 세상에 나오려는 여인의 몸부림을 잊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힘을 보태고자 한 소년이자 감독의 격려이다.
여성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이 페미니즘 영화는 놀랍게도 남성 감독이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에 불안함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같은 성의 여성을 뿌리칠 줄 알고, 자신에게 애정을 바치는 남성을 기다릴 줄 아는, 진정 주체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우뚝 섰다. 영화의 처음은 슬픈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고, 끝은 환하게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을 기록한 아들의 영상이다. 영화가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으로 열고 맺기에 두 사람의 행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간의 긍정적 관계맺음에 의심이 들지 않는다. 시적 영상의 페미니즘 로드 무비는 훌륭한 치유의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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