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10월 25일 개봉
일본 청춘성장영화와 카니발리즘
10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일본 청춘성장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는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2016), <로우>(2016)처럼 카니발리즘을 연상시키는 제목이 관심을 끌게 만든다. 이 영화는 작가 스미노 요루의 데뷔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동명 소설은 출간 이후 서점 대상 2위, 연간 베스트셀러 6위, 읽고 싶은 책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호평을 받아, 2017년 9월 기준으로 소설은 2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영화로 만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9월 25일 기준 일본 영화 흥행 수익 33억 엔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 영화에서 진실/도전 게임, 호명과 고백 등이 어떻게 소통과 치유에 이르게 되는지에 생각해 보고자 한다.
거스를 수 없어서 흘러가는 거야
국어교사 시가 하루키(오구리 슌)가 도서관의 장서를 정리하면서, 고교시절 자신(키타무라 타쿠미)과 사쿠라 야마우치(하마베 미나미)의 추억을 회상한다. 과거 외톨이 시가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학교 인기녀 사쿠라와 사랑을 나누나, 불의의 사고로 사쿠라가 죽게 된다. 현재 사쿠라의 죽음 이후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시가는 사쿠라의 고백과 격려의 편지를 발견하고는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인 시가와 사쿠라의 관계는 공병문고, 버킷리스트, 카드게임, 췌장, 편지 등을 통해 비밀 공유, 추억 쌓기, 진실 말하기, 도전하기, 고백하기, 자존감 찾기 등으로 관계가 점점 발전해간다.
우선 시가와 사쿠라의 관계는 병원에서 시가가 사쿠라의 공병문고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시한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기록하는 일종의 일기인 공병문고를 읽게 되면서, 시가는 사쿠라가 췌장암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쿠라는 시가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받고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소원이라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사쿠라의 버킷리스트 세 가지에 시가가 동참하게 되어 둘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게 되지만, 끝맺음을 하지 않아 계속해서 마음에 앙금을 남긴다. 첫째, 연말에 큐슈로 1박2일 여행가기. 시가는 여자와 1박2일 여행을 가야 하는 것에 당황하고, 사쿠라는 부모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둘은 함께 큐슈로 떠난다. 둘은 큐슈의 라멘을 먹고 절에 가서 소원을 빌게 된다. 시가는 ‘이 소녀를 낫게 해 달라’고 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어서 흘러가는 거야”라며 죽음에 대해 순응적 태도를 보이는 사쿠라는 이미 자신이 낫는 것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해 달라’고 빈다. 둘째, 연인이 아닌 남학생이랑 해서는 안 될 행동하기. 사쿠라의 집에서 사쿠라가 시가를 포옹하고 시가가 사쿠라의 두 손을 꽉 잡지만, 시가가 강하게 나가자 당황하는 사쿠라의 모습을 보고 시가가 뛰쳐나가 버린다. 셋째, 홋카이도에 벚꽃 보러 가기. 시가는 사쿠라가 퇴원하면 봄이 지나도 벚꽃이 피는 홋카이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그 약속은 끝내 실행되지 못한다.
진실이냐 도전이냐
그리고 두 사람은 진실/도전이라는 카드게임을 함으로써, ‘진실’을 통해 두 사람이 소통하게 되고 ‘도전’을 통해 시가가 자신의 벽을 뛰어넘는다. 두 사람은 큐슈 여행에서 호텔 측의 실수로 한 방에 자게 되어, 게임에서 진 사람은 진실을 말하거나 도전을 해야만 하는 ‘진실이냐 도전이냐’라는 카드게임을 하게 된다. 첫 번째 게임에서 진 시가는 ‘진실’을 택한다. “반에서 누가 가장 예쁘냐?”라는 사쿠라의 질문에 시가는 대답을 못한다. 사쿠라가 “반에서 내가 몇 번째로 예쁘냐?”라고 질문을 바꾸어 묻자, 시가는 “세 번째!”라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두 번째 게임에서 진 시가는 ‘도전’을 선택한다. 이에 사쿠라는 ‘침대에서 함께 자기’를 요구하여 시가를 당황하게 만들고, 둘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떨리는 밤을 함께 보낸다. 세 번째 게임에서 진 시가가 ‘진실’을 선택한다. 사쿠라는 “왜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거지?”라는 질문을 자신이 죽은 후 공병문고를 통해 전달한다.
시가가 예전에 좋아했던 소녀는 “무엇이든 ‘~님’을 붙이는 사람”인데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좋았지만 끝내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하자, 사쿠라는 시가가 좋아하는 이유가 멋지다고 말하며 격려해준다. 또한 사쿠라는 시가에게 “시가”의 이름을 처음 부르지만 사귀는 것은 아니며,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지만 여자친구는 아니며, 시가가 사쿠라의 스토커라는 소문에 시달릴 때는 친한 사이가 아니며, 시가와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는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쿠라의 부정 화법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시가의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 깊은 표현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두 사람의 고백을 통해 사쿠라는 사랑과 꽉찬 삶을 누리게 되고, 시가는 소통, 사랑, 자존감을 얻게 된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쿠라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안 하고 장례 후 시체를 유가족이 나누어 먹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등의 말로 시가를 당황하게 만든다. 시가가 식인의 의미인 “카니발리즘”이냐며 묻자, 사쿠라는 “아플 때 다른 동물의 그 부위를 먹으면 낫게 돼”라고 설명한다.
이후 사쿠라는 췌장을 “먹으면 그 영혼이 계속 그 속에 살아. 나는 살고 싶어”라며 자신의 힘든 속마음을 시가에게 털어놓는다. 시가는 사쿠라에게 보내는 문자에서 “넌 세 번째로 예뻐. 남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 나는 너가 되고 싶어.”라고 썼다가 지우고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표현으로 마음을 고백한다. 사쿠라도 시가에게 남긴 편지에서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똑같은 표현으로 시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사쿠라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식인이 아닌 영혼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사쿠라만의 독특한 사랑 고백이라는 것을 시가도 깨닫게 된다. 이렇듯 췌장에 관한 표현은 다섯 차례 나오며, 카니발리즘, 치유, 영혼의 공유, 사랑의 의미로 변화한다.
이러한 사쿠라의 호명, 고백 등으로 시가는 의지, 소통, 자존감 등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사쿠라는 시가와 자신의 관계가 공병문고 발견 등의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사해라. 난 사람 보는 눈이 있어.”라는 사쿠라의 격려로 시가가 교사의 길을 택하게 된다. 사쿠라의 엄마가 시가에게 공병문고를 건네주는 장면에서 “너 덕분에 꽉찬 삶을 살았어”라며 고마워하자, 시가가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사쿠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또한 사쿠라가 시가에 대해 “○○○ 클래스메이트”라고 부르는 호명 방식의 변화는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가에 대한 반 아이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상쇄시키며 시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시가는 사쿠라에게 “따분한 클래스메이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인기 많은 사쿠라가 외톨이 시가와 사귀자 반 아이들은 시가를 “암울한”(쿄코), “재수 없는”(반장), “스토커”(소문)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칭한다. 이에 대해 사쿠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 “주목받는 클래스메이트”,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라며 친밀하고 긍정적인 말로 시가를 호명한다.
죽기 직전 시가에게 남긴 편지에서 사쿠라는 시가의 이름을 불러주며 “하루키는 대단해. 그 용기를 나줘 줘. …… 하루키가 되고 싶어.”라며 격려한다. 이 편지를 읽고 시가는 연락이 끊겼던 쿄코를 찾아가 사쿠라의 귀걸이를 전달하고 쿄코와 친구가 되고, 쿄코의 약혼자인 껌친구와 다소 교류하게 되고, 사직서를 찢게 된다. 사쿠라의 죽음 이후 수동적이고 단절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시가는 사쿠라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다시 스스로의 의지를 갖게 되고 소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여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해서 5천 송이의 꽃을 보고는 자신의 꽃은 “흔해빠진 장미꽃 한 송이”이라며 슬퍼한다. 그때 나타난 여우는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면 그리워하게 되고 하나밖에 없는 관계가 된다고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또한 여우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하고, 친구가 갖고 싶거든 자기를 길들여보라고 말하는 등 친구가 되는 방법을 어린 왕자에게 알려준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의 관계를 통해, 여우는 이제 내 친구가 되었으니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이며,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꽃도 “내 장미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헤어질 때 여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고 “너 장미꽃이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된 건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라며 어린 왕자에게 비밀을 가르쳐 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책은 『어린 왕자』이며, 시가와 사쿠라의 관계에서 『어린 왕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준다. 현재 사서자격증이 있는 국어교사인 시가는 과거 사쿠라와 함께 도서위원으로 일할 때 『어린 왕자』를 통해 교감하게 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사쿠라가 시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여”라며 『어린 왕자』의 문구를 인용해서 말하고, 시가에게『어린 왕자』 책을 선물한다. 이후 시가가 『어린 왕자』 책을 잃어버리는데, 그 책은 사쿠라를 좋아하여 시가를 질투한 반장의 가방에서 나온다. 사쿠라가 죽은 후 시가는 도서관에서 하는 ‘보물찾기’를 좋아했던 사쿠라를 기억하고는 숨겨놓은『어린 왕자』를 찾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보내는 사쿠라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어린 왕자』와의 비교로 인해 영화의 의미가 풍부해지고, 누구나 알고 있는 『어린 왕자』를 인용함으로써 관객이 상호텍스트성에 쉽게 참여하도록 만든다. 시가가 사쿠라와의 만남을 통해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시가와 사쿠라의 관계는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현재의 시가는 따분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며 사직서를 서랍에 넣고 다닌다. 하지만 공병문고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고, “정말 중요한 건 눈에 안 보여”라는 말을 듣고, 버킷리스트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진실/도전 카드게임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의식을 치렀던 과거 사쿠라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시가는 관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과거/현재의 교차편집을 통해서 단절/소통, 고통/치유, 절망/희망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서는 시가가 사쿠라와의 만남을 통해 외롭고 우울한 삶에서 소통하고 따뜻한 삶으로 변화한다. 시가가 사쿠라 스토커라는 소문으로 힘들어 할 때 사쿠라는 “나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대화를 안 해서”라고 이유를 말해줌으로써 시가가 껌을 주는 아이와 친구가 되게 만든다. 하지만 현재 사쿠라의 죽음 이후 다시 외롭고 우울한 삶을 사는 시가는 사쿠라에 대한 회상과 편지를 통해 다시 소통하고 희망을 품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공통분모는 『어린 왕자』, 껌 친구, 사쿠라의 친구 쿄코인데, 시가는 『어린 왕자』 책을 찾고 쿄코의 신랑이 되는 껌 친구를 다시 만나고 사쿠라의 소원대로 쿄코와 친구가 된다.
또한 영화에서 과거의 사쿠라와 현재의 시가가 한 화면에 공존함으로써 과거의 추억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가의 현재 상태를 표현해 준다. 그리고 시선에 있어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시가와 달리 사쿠라는 항상 시가를 바라보고 있고 그와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나중에 시가는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과거의 사쿠라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되찾게 된다.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시가는 사쿠라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 사쿠라에게 진실을 말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고, 사쿠라의 배려 깊은 호명과 고백으로 친구와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사쿠라의 격려로 자존감이 올라가게 되고 죽음에 대한 상처를 치유받게 된다. 첫 데뷔작이기 때문에 카니발리즘을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문구로 시선을 끌고자 했다고 밝히는 원작 소설가의 의도대로, 이 영화는 “나는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사쿠라의 독특한 사랑 고백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일본 청춘성장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섬뜩한 제목과 상큼한 로맨스의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해 절제된 감성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 영화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네이트 - 어린 왕자 - 이미지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