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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지구를 향해 천년 만에 거대 혜성이 다가온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티아마트인데, 티아마트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최고신 마르둑과 관련된다. 마르둑은 창조 이전 혼돈의 상태에서 신들의 회의를 열어 혼돈의 신인 티아마트를 찢어 죽이고, 그 찢겨진 거대한 몸으로 가시적인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혜성 티아마트는 죽음을 불러오는 존재라는 뜻이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극영화/애정물, 일본, 2016, 106)에서 주어진 상황이다.

도쿄에 사는 도시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한번으로 그칠 줄 알았던 꿈은 주기적으로 다시 찾아왔고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규칙을 만들어낸다. 몸이 바뀌었을 때 벌어진 사건을 메모해 두면 자기 몸을 되찾았을 때 당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비록 비상사태를 위한 대비책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볼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우정 아닌 우정을 쌓아가던 중에 두 사람은 엄청난 진실을 대면한다. 티아마트가 불러올 재앙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2011년 일본은 최악의 쓰나미를 겪어 수많은 인명손실과 재산피해를 경험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후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로 반경 30Km 넓이의 폐허가 생긴 것이었다. 일본 한구석 폐허의 땅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어떤 것일까? 그들은 서울 크기만 한 저주의 땅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까?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참으로 묘하다.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쉬 잊고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느냐는 듯 희희낙락하지 않는가. 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해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여전히 남아있는 법이다. 특히 전 국민에게 집단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이라면 더더욱 잊힐 수 없다. <너의 이름은>에서 일본인들에게 남아있는 후쿠시마의 진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름은 참으로 묘한 작용을 한다. 치매환자들은 우선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일종의 건망증으로 여기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이름과 함께 그 실체까지 머리에서 지워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체통을 보면 그 이름은 물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까지 모르는 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중증 단계에 이르면 가족도 몰라보아 치매전문요양원에 넘겨지고 죽음을 맞이한다. 후쿠시마에서 사라져간 소녀여, 너의 이름은 무엇이었지? 사진에서 보았던 너의 아름다운 고향 이토모리는 어디로 사라졌지? 세월 호에서 수장당한 소년이여, 자네의 성명은 어찌 되는가?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1700만 관객을 끌어 모았고 우리나라에서도 300만 명을 돌파했다. 가벼운 기조로 출발해 심각한 결말로 유도해내는 솜씨가 뛰어났고 만화 캐릭터들의 관계도 역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일본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일본 토속 신앙을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끌어들인 작업도 훌륭했다. 게다가 심각한 주제의식까지 더해지면서 생각할 거리를 관객에게 넘겨준 데서 영화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적으로 짠 손목 끈은 시간의 속성을 보여준다. 시간이란 뒤틀리거나 얽히거나 이어지거나 다시 돌아온다. 바로 우리의 기억이 그렇게 시간을 섞을 수 있는 것이다. 망자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서 오히려 오늘의 살아가는 생명의 힘을 얻을 수도 있는 셈이다. 미츠하!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304 분의 이름.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 비로소 이 시대를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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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7-06-09

조회수8,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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