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감독의 『계춘할망』
할망 계춘을 통해 성찰해본 가족
창(윤홍승) 감독의 『계춘할망』은 현재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극영화이다. 감독은 ‘가족’을 화두로 놓고 인간 사이의 ‘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제목 자체에서 호기심이 이는 계춘할망은 계춘(홍계춘)+할망(할머니)의 합성어 이다. 뮤직 비디오 감독을 하다가 공포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로 데뷔한 창 감독은 『계춘할망』을 ‘이지 고잉’으로 연착륙시킨다.
두 시간에서 사 분이 빠지는 영화는 미학적 수사나 세익스피어적 대사의 화려함을 우회하여, TV드라마를 보듯 편안하게, 제주도 보통사람들의 가벼운 방언과 생활방식대로, 비눗방울처럼 부드럽게 서민적 삶을 묘사해낸다. 영화는 지나친 궁상이나 침울함을 내세우지 않고, 이런 저런 많은 고민들을 속으로 껴안으며 살아가는 속 정(情) 깊은 사람들을 전진 배치시킨다.
계춘(윤여정)은 물질로 살아가는 잠녀이다. 아들을 잃고 며느리도 자신을 떠난 상황에서 계춘은 제주도의 수려한 풍광과 달리 서울의 시장에서 잃어버린 손녀 혜지/은주(김고은) 때문에 늘 죄책감, 아쉬움, 회한을 달고 산다. 여섯 살에 실종된 손녀가 열여덟이 되어 귀향한다는 낭보를 받는다. 수상했던 손녀가 가짜임이 밝혀지지만 할망의 혜지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허허실실, 창 감독은 허술한 듯하지만 실한, 모자란 듯하지만 꽉 찬, 겸손한 듯하지만 할 말은 다하는 『계춘할망』으로써 장르(드라마, 공포, 액션)에 구애없이, 분야(감독, 기획, 각본)에 관계없이, 지역(한국, 중국, 호주)을 떠나 자신의 개성과 특유의 흥행감각을 살려가며 작품을 창출하는 감독임을 입증했다. 대사 속 ‘하늘’과 ‘바다’에 대한 은유는 감독 자신일 수 있다.
마음 너른 창 감독은 『계춘할망』을 분석적 도구의 제물로 삼는 것을 경계한다. 모든 부분을 안정된 구도 속에 집어넣고, 앞뒤 배우 모두가 편안하게 힘든 일을 처리해내며, 성취감을 얻도록 해주는 은근한 노련함의 소유자이다. 그가 연출력이 미진하여 긴장감이나 반전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괘도를 벗어났다면, 이 영화는 홍보영화나 관광엽서로 전락했을 것이다.
혜지에게 위안과 마음의 정제장치가 되었던 계춘할망, 노란 유채꽃은 혜지의 명랑성과 활력, 계춘할망의 포근함을 동시에 상징한다. 『계춘할망』에서의 기본적 흥밋거리는 불량소녀 혜지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할머니를 속이는 손녀의 역할과 고교생으로써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괴짜 미술교사(양익준)를 만나 자신의 미지의 능력을 깨우쳐가는 과정이다.
반전은 혜지가 제주도를 떠나면서 벌어진다. 미술경시대회에 참가한 혜지는 불량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신분이 들통 난다. 컷 백으로 잡힌 회상 장면에서 혜지로 둔갑한 은주의 과거가 드러난다. 모든 정황이 밝혀져도 계춘에게는 손녀가 되어준 혜지가 바닷가에 뛰노는 돌고래로 비춰진다. 감독은 가족의 상실에 대한 치유의 능력을 계춘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의 대칭적 상응, 무조건 자기의 편이 되어 주었던 할망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즉각 반응에 나선 혜지, 끝내 시장에서 할머니를 찾아낸다. 혜지를 위해 팔았던 시골집, 그 돈을 가로챘던 혜지,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인간의 마음속에 잊혔던 사랑의 유전자를 되살리는 작업이다. 영화는 ‘세상이 섬의 그늘보다는 정을 통해 엮여져 있음’을 밝힌다.
할머니 품에 안긴 혜지의 수상작 그림, 혜지가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안겨드린 자신의 성과물이다. 혜지의 앞으로의 각오가 틀(사회) 속의 그림에 담겨져 있다. 혜지의 얼룩진 과거를 치유해낸 것은 스스로 반성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리며 믿어준 하늘을 품은 사람들의 사랑이다. 감독은 대나무의 ‘싹틈’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림과 사랑의 ‘계춘할망들’을 존중한다.
『계춘할망』은 제작자의 영화에 대한 느긋한 믿음, 독창적 아이디어와 탄탄한 구성으로 전개시킨 감독이 이끌어가는 잔잔한 이야기에 대한 설득력, 아름다운 풍광을 무리 없이 영화의 감정과 연결시킨 여러 부문과의 조화, 고정 이미지를 탈색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휴먼 가족 드라마로써 치정과 살인 코드의 영화계에 새로운 모범을 보인 영화다.
장석용 영화평론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