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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상: 신연식 <동주>

……내는 지금 같이 갔으면 좋겠다. 동주야, 가자 동주야.

송아름(영화평론가)

 


신연식은 시각적 희열을 앞세워야 한다고 믿는 스크린들의 틈에서 소곤대며 읊조리는 것으로 자신의 스크린을 채워나가는 각본가이자 감독이다. 그는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말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 <페어러브>로, 아예 스크린으로 소설쓰기라는 행위를 옮겨왔던 <러시안 소설>로 그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 큰 스크린을 속살거리는 문자들로, 문학적 감수성으로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진대, 신연식 감독은 늘 이를 적절히 흥미롭게 성취해 낸다. 무엇보다 찬찬히 스크린을 훑어나가는 그의 작업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 감수성 속에 녹아든 인물에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이 바로 <동주>이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식민지 지식인들을 대할 때 우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까지도 배제하도록 배운 것 같다고. 우리는 나라 잃은 지식인이 짊어지고 있을 시대의 무게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해서도 안 된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신연식은 <동주>를 통해 우리가 쉽게 도려냈던 그 부분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으로 드러내 보인다. ‘여성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조국의 독립을 꿈꾸었던 저항시인 윤동주’라는 틀에 박힌 도식은 간단하게도 ‘동주야’라고 부르는 그 흔한 호명만으로 쉽게 무화되어 버린다. <동주>에서 동주가 성까지 붙어 윤동주라 불리던 순간들은 ‘히라누마 도쥬’라는 창씨개명 후의 이름일 뿐, 영화 속에서 들리던 그 많은 ‘동주야’는 그를 섬세한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청년으로 잠시 내려놓는다. 성을 떼어내는 것만으로 윤동주는 사촌형인 몽규의 신춘문예 당선을 질투할 수 있고, 첫눈에 반한 여인 때문에 수줍어할 수 있고, 무엇보다 눈앞에 닥칠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는 너무도 시린 그 시절의 청년 동주가 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완성된 작품을 내민 대단한 시인이 아니라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것만으로도 고뇌했던 이 청년을 만나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 <동주>의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이후, 신연식 각본가가 먼저 만나고 그렇기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다른 인물들에게도 ‘동주’와 나눴던 만큼의 애정과 아픔과 존중이 함께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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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7-02-24

조회수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