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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이경미 <비밀은 없다>
워맨스 스릴러, 혹은 불협화음의 성정치학

정민아(영화평론가)

 

 

2016년 다양한 젠더 관련 이슈들이 부상하면서 영화계에도 페미니즘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관객이 많아졌다. 기존 방식의 젠더 재현을 전복하거나 소수자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개봉하면 깨어있는 관객이 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양상이 올해 부쩍 눈에 띠었다. 일명 ‘씨네페미니즘 리뷰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올해 좋은 여성영화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여성 자신의 시각에서 담아낼 여성감독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좋은 여성영화는 늘어나고 있는데 여성감독이 별로 없다. 세상은 젠더 이슈에 밝아지고 있지만, 현장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여성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다. 첫 작품이 비평적으로 인정받고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두 번째 작품까지 텀이 매우 길다. 여성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데뷔작이 보여준 개성적인 시도를 뛰어넘어 시장에서 전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감독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흥행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임무를 위해 여성감독들은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인다.

2000년대 이후 브로맨스 장르영화의 쏠림 현상이 심각한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자배우들은 역할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꽤 근사한 워맨스(womance) 영화가 있어도 관객이 이를 발견해주지 않는다. 여성감독의 워맨스 영화는 진부하다고 여기고, 여성감독의 브로맨스 영화는 뭘 모르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남성감독의 워맨스 영화는 상찬 받는 이 기이한 현상 한가운데,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은 올해 가장 박수받을 만한 장르적 실험을 보여주었다.

피해자인 동시에 탐정 역할을 해나가는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선택했다. 이경미는 8년 전 <미스 홍당무>에서 보여준 비범한 개성과 블랙유머가 살아있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플롯을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매력적이어서 강렬한 인상으로 영화를 압도한다. 의도적인 불협화음의 사운드와 비선형적이고 비균질적인 편집은 장르 서사의 긴장감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한국사회에 대한 훌륭한 상징 언어로 기능한다. 장르영화의 규칙을 한 차원 높인 영화적 성취라고 칭찬하고 싶다.

가족, 정치, 학교, 소수자 등 우리 주변의 모든 부조리한 문제를 총 망라한 가운데, 멍청하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성인여성과 황량한 십대 소녀들을 둘러싼 모든 공간과 소품이 영화적 의미와 단서로써 정밀하게 배치된다. 세밀한 연출력과 뚜렷한 개성으로 충만한, 이경미식 에너지의 영화다. 여성감독과 여성캐릭터가 빚어낸 소중한 워맨스 스릴러이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대담한 성 정치학 텍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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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7-02-24

조회수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