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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영화인상: 영화감독 임권택
한국영화의 위상 높인 최장수 ‘국민 감독’ 임권택

김종원(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

 

한국영화계에 임권택 감독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국영화사상 이 감독만큼 장기간 현역으로 활동하며 영화계의 좌표가 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1962년 대륙활극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연출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2014년 <화장>까지 52년 동안 모두 102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그것도 팔순이 넘는 나이에 도달한 미답(未踏)의 고지였다. 60세가 넘는 영화감독의 활동이 전무한 현실로 볼 때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편수로 보면 고영남(38년간/104편), 김수용(42년간/103편)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영화를 내놓았지만 임권택은 52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유일하게 영화현장을 지킨 한국영화의 상징이다. 이는 세계영화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임권택 감독은 1960년대 충무로의 양산 체제 아래서 <십년세도>(1964)와 <황야의 독수리>(1969) 등 각기 6편을 내놓았다. 1964년과 1969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1년 동안 많을 때는 두 달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어내며 액션, 멜로,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였다. 그러나 데뷔 이후 11년 만에 만난 51번째 영화 <잡초>(1973)를 계기로 전환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 한 여자(김지미)의 모진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한 프레임 속에 여러 인물들을 담는 평면적인 와이드 앵글 대신 1960년대까지 거의 외면받은 클로즈업을 활용한다. 뒤에 나온 <길소뜸>(1985)과 <티켓>(1986)의 경우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비판적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만성형의 영화작가로서 그의 존재감은 <만다라>(1981)에 이르러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그는 한층 단련된 장인(匠人)의식과 형상화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인본주의의 밑그림을 제시하고, 잇따라 <씨받이>(1986), <서편제>(1991), <개벽>(1993), <취화선>(2002) 등을 통해 완성한다. 그 결과 임 감독은 <씨받이>에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이끌어내고, <취화선>을 통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그는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그동안 임권택 감독이 거둔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기리는 마음을 모아 그에게 2016년도 영평상 공로영화인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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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7-02-24

조회수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