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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작가론_나홍진 영화의 아이러니적 주제와 흥행요소_황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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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작가론
나홍진 영화의 아이러니적 주제와 흥행 요소
황영미(영화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1. 머리말

나홍진 감독은 미장센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2005)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예술가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창작의 길을 가는 세계에 속한 사람의 고통을 요리사라는 직업을 통해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부터 나홍진 감독이 주제를 어떤 식으로 전달하는지가 드러난다. 바로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는 목적과 결과가 상반되는 상황을 말한다. 엔딩의 한 장면을 위해 인물들이 온갖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 결과는 그 고통을 대가로 받는 성공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실패보다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구현방식은 나홍진 감독의 세계관이 아이러니하다는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제구현방식은 최근작인 <곡성>(2016)까지 나홍진 감독 영화 전체에서 발견된다. ‘작가는 삶의 이치를 미리 보아버린 자’라는 말이 있다. 나홍진 감독은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이러니한지를 미리 깨닫고 이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인물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몰입도가 상당히 강하다. <완벽한 도미요리>에서는 벤처스Ventures의 파이프라인Pipeline이라는 음악을 주제음으로 사용하여 구성을 세분하는 등의 여러 장치를 통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사실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흥행과 거리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관객 몰입도를 높여주는 장치나 요소로 인해 흥행에도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완벽한 도미요리>에서부터 <곡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아이러니적 요소와 관객 몰입도에 의한 흥행요소를 밝히고자 한다.

2. 엔딩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

<완벽한 도미요리>에서 ‘완벽한 도미요리’를 주문받은 요리사는 최선을 다해 요리를 하게 된다. 심지어 요리 도중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가 하면, 자신의 신체를 식재료로 사용하기까지에 이른다. 그 과정은 끝이 없이 반복되는 지난한 과정이 되었고 음식을 기다리던 손님은 굶어 죽는다. 요리사는 자신이라도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먹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 허무한 결말은 삶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은 것은 결국 죽음이라는 결과일 뿐이라는 삶의 진리를 가시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홍진 감독이 다음으로 만든 <한汗>(2007)은 아무런 대사도 없이 장면만으로 진행되는 흑백영화로, 땀을 흘리는 사람과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하 ‘A’)의 자본주의적 계급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땀방울 하나하나를 장면에 담아내며 땀을 흘리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얼굴에서부터 팔에 맺힌 땀방울까지를 다양한 상황에서 그린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 않는 자(A)는 바뀌지 않고, 이 사람을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이 영화의 처음 장면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편안하게 누워 자신의 몸을 때 미는 사람에게 맡긴 자(A)의 편안한 모습을 대조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다음 장면은 건물을 짓는 공사장 인부가 흘리는 땀이 그려진다. 무거운 건축 자재를 등에 지고 건축물을 올라가는 인부의 땀방울은 아래에서 지시하는 자(A)의 얼굴에 떨어진다. 다음 상황은 음식점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여성의 땀으로 이동한다. 이 여성이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삼계탕은 편하게 먹는 자(A)의 입으로 마구 들어간다. 쩍 벌어진 먹는자(A)의 입과 입속으로 들어가는 닭다리 살이 느린 화면으로 천천히 클로즈업된다. 다른 사람들이 흘린 땀으로 살아가는 자(A)가 유일하게 땀을 흘리는 경우는 그가 성욕을 분출할 때이다. 그 장면마저 그에게 깔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땀을 흘리는 여성에 주목한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적 특성은 가진 자로서 A의 역할이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믿고 살아가지만, 이 영화는 우리 삶이 철저히 이를 배신한다는 자본주의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추격자>(2008)는 여성들을 살해한 범인이 지영민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진행된다.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지연민은 경찰서에서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오게 된다. 죽은 여성들이 소속되어 있는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는 여성들의 전화기록에 남은 전화번호를 통해 지영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추적해 복수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엄중호가 지영민과 혈투를 벌이는 엔딩 장면에서 엄중호는 지영민의 손에 있던 망치로 지영민을 내리치려 한다. 이는 살인자와 그렇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질문한다. 즉 엄중호가 그렇게 추격하던 살인마 지영민과 엄중호는 자신이 다를 바 없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다.

<황해>(2010)는 나홍진 감독의 아이러니가 가장 잘 드러난 영화다. 연변의 택시 운전사 구남은 마작판에서의 빚이 늘어나게 되자, 살인청부업자 면가의 유혹에 말려든다. 한국에서 누군가를 죽이면 빚을 갚아준다는 면가의 말에, 구남은 돈 벌러 한국으로 가서 소식이 끊긴 아내도 찾고 돈도 벌겠다는 생각에 황해를 건넌다. 구남은 살인 기회를 노리지만, 다른 사람이 그를 살해하는 바람에 살인자 누명만 쓰고 경찰과 면가 둘 다에게 쫓기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떠나는 구남은 이미 칼에 찔려 과다출혈을 한 상태다. 잔인한 삶과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흘러가는 황해에서 구남은 중국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사체가 되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목표로 하면 할수록 삶은 우리를 잔인하게 배신한다는 아이러니가 <황해>의 주제이다.

 

이후 6년 만에 내 놓은 영화 <곡성>(2016) 역시 결말의 아이러니를 위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외지인이 나타난 후 마을사람들이 괴질에 걸려 죽는가 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마귀가 들린 채 이로 인한 살인 사건이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의 일로만 여겼던 사건이 딸에게도 일어나게 됨으로써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경찰 종구는, 범인으로 짐작되는 외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흉흉한 소문과 함께 진실을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영화의 핵심주제인 ‘신이 부활한다면 마귀 또한 부활할 수 있다’는 전제는 도입부와 결말부에 나타나 구조적으로 수미쌍관을 이룬다. 이 영화의 인트로에 제시되는 성경 구절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난 예수의 실체에 대한 내용이다. 엔딩에서 믿느냐 의심하느냐가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으로 설정되면서 의심하는 주체가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일반인 종구뿐만 아니라 종교인인 신부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이로써 이 영화의 주제가 종교의 본질에 있다는 것이 전달된다. 종구는 그를 도와주려는 무명을 의심했기 때문에 온가족이 처참하게 죽는 참변을 맞이하고, 결국 마음 약한 자는 의심의 꾀에 넘어가서 마귀한테 홀릴 수밖에 없음은 신부를 통해 드러난다. <곡성>은 결국 종교의 본질을 믿음과 반대되는 ‘의심’이라는 화두를 통해, 신의 존재를 마귀의 존재를 통해 아이러닉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3. 관객 몰입도에 의한 흥행요소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어둡고, 처참하고 잔인하게 사람이 살해되거나 심한 고통을 받는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는 데다, 허무한 결말구조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주조인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국제영화제 초청이나 수상은 가능하나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과연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부터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칸에 초청되었고, <황해>나 <곡성>도 마찬가지로 초청되었다. 특히 <곡성>은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뤼미에르 극장에 상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국내 영화상 수상도 많을 뿐 아니라 국내 흥행도 성공적다. <황해>만 다소 저조해 226만 명이 관람했을 뿐, <추격자>가 507만 명, <곡성>은 688만 명 가까이 관람한 흥행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어떤 요소 때문에 흥행하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먼저 <추격자>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망원동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일상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리얼리티를 갖춘다. 살인마 지영민은 우리가 흔히 지나던 길거리에서도 부딪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지영민의 실체가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속도감과 긴장감 있는 전개로 영화 속 살인사건이 관객에게 체감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는 리얼과 픽션을 줄타기 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주는 공포를 긴장감 있게 표현하여 관객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곡성>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영화 속 끔찍한 상황을 체감하게 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할 때 하는 말과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도 징소리나 무당의 춤사위에서 뿜어내는 뭔지 모를 두려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처럼, 한바탕 제의에 함께 참여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곡성>은 마치 실재하는 듯한 리얼리티와 픽션적 사건의 줄타기의 성공으로 인해 픽션이 리얼리티를 가지게 됨으로써 강한 흡인력을 지니게 되는데, 이 점이 흥행의 한 요소가 된 것이다.

또한 누구나 <곡성>을 볼 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기 마련이다. 뭔가를 상징하는 듯한 요소들, 이를 테면 까마귀, 목격자 무명이 종구네 집 앞에 걸어둔 해골을 뜻하는 꽃 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목격자 무명, 박수무당 일광, 외지인 중 누가 악마고 누가 선인가? 이러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관객을 영화 속으로 참여시키는 요소로 둔갑하게 된다. 의문의 요소가 너무 많으면 관객들은 영화가 너무 알 수 없게 만들어졌다며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곡성>은 그런 의문들이 관객들과 줄타기를 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예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알 수 있을 듯도 할 정도로 설정되어 있기 있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은 스스로 해답을 찾아보기 위해 재관람하거나 의문의 요소들을 분석한 글을 찾아보게 되고, 그 결과 해석 담론이 점점 풍성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 속에 영화가 계속 놓여 있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즈』 서문에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과 평론가들이 이 책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내기 위해 밤을 샐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불멸을 보장하는 방법이다”라고 써 놓은 것처럼 나홍진 감독은 수많은 수수께끼를 편집이나 상징물 등을 통해 <곡성> 속에 감춰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관객들이 찾아 맞추며 꿰어야 하는 퍼즐 같은 불확정영역은 <곡성>이 지니고 있는 흥행 비결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4. 맺음말

관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긴장시키는 여러 장치들로 인한 흡인력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아이러니한 주제를 구현하는 결말구조가 바로 나홍진 감독을 작품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감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이 글에서 밝혔다. 영화가 간접체험 장르임에도 마치 직접 체험하는 듯한 환각을 준다면,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현실에서 지니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서 해방되어, 러닝타임 동안만이라도 다른 세계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 장르는 코믹하게 웃기면서 세상의 고민을 잊게 하기도 하지만, 나홍진 감독의 영화처럼 무서움과 두려움의 강렬한 체험을 통해서도 같은 효력을 발생시킨다. 나홍진 감독은 깊은 성찰적 주제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기법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떤 두려움을 우리 앞에 내 놓고 두 손 들게 만들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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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7-02-24

조회수1,883